2021년 5월 30일 주일저녁 예배"겸손함과 교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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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보고 있는 에스더는 포로 귀한 시대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간 순서로 보면 에스라를 기준으로 에스라 6장과 7장 사이의 이야기 입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네 번째 왕인 아하수에로 왕 때에 일어난 일인데, 지금도 유대인들이 지키고 있는 부림절 기원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에스더는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일종의 역사 단편 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도 크게는 네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발단에 해당하는 1장과 2장입니다. 페르시아의 왕후 와스디가 폐위되고, 에스더가 왕후에 자리에 오릅니다. 그리고 위기가 찾아오는데 에스더 3장과 4장입니다. 유대인 모르드개와 아각 사람 하만의 대립으로 결국 모든 유다인들이 한 날에 죽게 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리고 5장부터 7장이 에스더 이야기의 절정을 이루고 8장부터 10장까지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교독한 본문은 이야기 전체의 절정에 해당하고 특히 5장은 에스더 말씀이 클라이막스로 가기 위한 서막에 해당됩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볼텐데 첫째는 1절부터 8절입니다. 에스더가 왕과 하만을 잔치에 초대하는데 에스더의 믿음과 겸손함을 보게 됩니다. 둘째는 9절부터14절입니다.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한 하만의 음모와 그의 교만함이 잘 나타납니다.
먼저 본문 1절을 보겠습니다.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1절의 시작을 보면 “제 삼일에”라고 언급합니다. 여러분 이 날이 어떤 날인지 아십니까? 에스더 4장 16절을 보겠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에스더 말씀구절 중 가장 유명한 구절입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이렇게 고백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왕께 나아가지 않으면 자신의 동족 유다인을 구원할 길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망설였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이전처럼 자신을 찾지 않은 지 오래 되었고, 심지어 함부로 왕 앞에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일전에도 왕을 시해하려는 음모가 있었기 때문에 미리 허락을 구하지 않고 왕께 나아가다간 까닥하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망설임 가운데 모르드개가 일침을 놓습니다. 에스더 4장 14절입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곰곰히 생각해보면 자신이 왕후에 자리에 오르기까지 하나님의 일하심이 없었더라면, 사실 자신은 아무런 자격도 능력도 없는 자였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의 신하들의 마음도 열어주시고, 왕의 마음도 움직여주셔서 자신이 왕후에 올랐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에스더의 결단은 세상의 권세를 잡고 있는 페르시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붙들고 하나님 편에 서기로 결단합니다.
그 결단이 기도를 통해서 증거됩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자신과 시녀들 그리고 모르드개와 수산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금식하며 함께 기도하기를 요청합니다. 즉, 에스더의 겸손은 기도를 통해 나오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지혜를 주십니다.
탁월한 세계 선교 전략가인 패트릭 존스톤 선교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when we pray, God works.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일하신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에스더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 1절을 다시 보면 제 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에 예복을 입고 왕에 어전 앞에 섰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각오를 가지고 섰을 때 본문 2절을 보겠습니다.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를 보았는데 매우 사랑스럽게 비춰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잠언 21장 1절입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논에 물을 댈 때에 그 도랑를 임의로 파는 것이 농부에 손에 달려 있듯이, 세상 왕의 마음까지도 다 하나님께 달린 것입니다.
사실 에스더가 왕후의 복장을 갖추고 와서 그나마 에스더인 줄 알아본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에스더 상태가 썩 좋아보이진 않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삼일을 밤낮으로 금식하고 기도중에 있었기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잤습니다.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왔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것도 매우 사랑스러워보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일하십니다. 이제 왕의 마음이 에스더를 보기만 했음에도 흡족하여 본문 3절에 이렇게 묻습니다.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니"
왕이 기쁜 마음으로 소원을 말해보라 합니다. 여기서 뒷 부분은 그냥 하는 말이니 너무 신경쓰지 말아야 합니다. 나라의 절반을 주겠다고 하는데, 소원 두 번 들어주면 나라 전체가 날아갑니다. 그냥 그 마음만 받으면 됩니다.
이제 에스더의 대답입니다. 본문 4절을 보면 "에스더가 이르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오소서 하니"
이 대목이 에스더의 믿음과 겸손함이 잘 나타나는 부분입니다. 여기 보면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미 잔치를 준비했다는 뜻인데 언제 준비했냐면 왕에게 나아가기 전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로다 하는 믿음의 고백 그리고 기도하기를 마치고 왕에게 나아가기 전에 잔치를 준비했다는 겁니다.
잔치를 준비할 때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왕이 자신을 받아 줄지, 거부할 지 모릅니다. 심지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치를 먼저 준비하는 에스더를 보면 마치 다니엘의 세 친구가 떠오릅니다.
다니엘 3장 17-18절을 보겠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의 세친구들이 느부갓네살의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아서 풀무불 가운데 던져질 위기에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의 고백은 이렇습니다. 맹렬이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전능자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고백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우상 숭배하지 않습니다. 이미 하나님 편에 서서 죽기를 작정했다는 겁니다.
이것이 겸손한 믿음입니다. 맹목적인 믿음은 무조건 구해주실꺼야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짜 믿음은 내 기도대로 되지 않아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 편에 서는 겁니다.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로다"라고 한 것은 그 정도 각오를 가지면 무조건 하나님이 구해주시겠지! 가 아닙니다. 오히려 일이 잘못될 수도 있지만 하나님 편에 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근데 참 신비한 것이 바로 그 때에 살 길을 열어주십니다.
본문 4절 보겠습니다. “에스더가 이르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오소서 하니”
소원을 말하라고 했더니 잔치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하만과 함께 오라는 요청에 왕은 기쁜 마음으로 갑니다. 잔치에 차려진 음식과 술을 마시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갑니다.
다시 한 번 아하수에로 왕이 흡족하여 에스더에게 말합니다. 본문 6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잔치의 술을 마실 때에 왕이 에스더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 하니”
아하수에로 왕이 두 번이나 에스더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합니다. 근데 여기서 잘 보면 에스더의 겸손함 그리고 에스더의 지혜를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에스더의 소원은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동족 유다인 살려주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요청을 하는데 있어서 신중에 신중을 더합니다.
왜냐면 이것이 삼일 밤낮을 기도했던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에스더는 하나님의 인도와 지혜를 구했을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5절 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즉, 에스더에 응답했던 하나님의 지혜는 마땅히 행할 바를 알게 합니다. 의도적으로 아하수에로 왕의 물음에 본심을 바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잔치에 아하수에로 왕을 청하기도 전에 바로 하만은 나쁜사람입니다. 저의 동족인 유다사람들을 진멸하려 합니다. 구해주시길 바랍니다. 라고 했다면 상황이 또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생각보다 하만은 악인이지만 막강한 권력과 부유함 그리고 간계를 가진 자입니다.
그가 아하수에로 왕을 구어삼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유다인을 죽이기 위해서 거짓 정보를 흘리고 막대한 뇌물로 아하수에로 왕의 분별력을 흐리게 합니다. 전에도 봤지만 뇌물의 양이 은 일만 달란트 입니다. 페르시아의 국세 1년치의 70%에 해당하는 큰 돈입니다.
이정도로 치밀한 자가 하만인데 무턱대로 에스더가 하만의 일을 드러냈다면 오히려 하만이 더 치밀하게 준비하고 대처해서 또다시 아하수에로 왕을 구어삶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에스더는 겸손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반면에 하만은 오히려 교만함이 더욱 드러납니다.
본문 11절과 12절을 보겠습니다. “자기의 큰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왕이 자기를 들어 왕의 모든 지방관이나 신하들보다 높인 것을 다 말하고 또 하만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가 그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 받은 자는 나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느니라”
자기가 각각 왕에게, 왕비에게 높임을 받았다고 2번이나 자랑합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한 것이 있는데 세상에서 많은 것을 가질수록 그것이 오히려 약점이 될 때가 많습니다.
본문 11절이 자랑합니다. 자기 큰 영광 이것은 자신의 재산의 부유함을 말합니다. 페르시아 1년치 국세의 70%를 한 번에 줄 수 있을만큼 부자입니다. 둘째 자식들이 많다는 것인데 나중에 보면 아들만 10명입니다. 세상적으로는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가진것으로 하만은 점점 교만해집니다. 오히려 사리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기 무덤을 팝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이 말씀이 점점 이루어지는데 다시 본문 8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시기를 좋게 여기시면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 하니라”
만약에 하만이 겸손했다면 이 요청을 거절했을 겁니다.
왕이 에스더의 소원을 이루어주겠다고 하자 에스더는 의도적으로 그것은 내일 베풀 잔치에서 말하겠노라 하고 8절 후반절을 자세히 보기실 바랍니다.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라고 합니다.
첫 잔치는 왕히 급히 불러서 간 것이라고 하지만 두 번째는 분위기가 쌔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잔치의 목적이 왕과 하만을 위해서 라고 합니다.
왕과 동등한 위치로 여겨집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하만이 거기에 낄 자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만은 오히려 왕과 왕비가 날 인정하고 높여줬다고 마음이 높아졌습니다. 잠언 16장 18절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이것이 하만의 교만이며 그 교만으로 하만은 무너질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무너질지 예고되면 면이 있습니다.
본문 14절입니다.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들이 이르되 높이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매달기를 구하고 왕과 함께 즐거이 잔치에 가소서 하니 하만이 그 말을 좋게 여기고 명령하여 나무를 세우니라”
오십 규빗 약 22미터 그러니깐 아파트 높이로 9층이나 10층 정도로 높은 나무를 세워서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합니다.
이것이 교만한 자의 특징인데, 경솔하고 조급합니다. 당장에 모르드개를 죽여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에 휩싸여 그 밤에 높은 나무를 세웁니다. 사실 자기의 무덤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내가 가진 부유함과 권력이 나를 영원히 지켜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약해보일지라도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이 생명의 길을 여십니다.
겸손히 구하는 자에게 살 길을 열어주십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으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